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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편집기사들이 말하는 편집론

드리머55 2016. 4. 11. 12:24

영화편집기사의 편집론

영화편집이란 무엇인가? 잘된 편집이란 무엇인가?

 

        

            (김상범 편집기사)                                             (김선민 편집기사)  

 

김상범 편집기사 [공동경비구역], [친절한 금자씨]

 

내가 꼽는 명편집/ 강의를 나가면 <대부>로 강의를 자주 한다. 오버랩, 사이즈 변화, 페이드 아웃에 관한 상식을 깨뜨리는 작품이다. 자동차 내부신을 찍을 경우 이 각도 저 각도에서 다 찍어보는데, <대부>는 정면만 찍는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가 중요하지 각을 바꿔 찍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화면 변화를 주려고 안달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소니의 죽음에서 클로즈업과 롱숏과의 대비, 첫 시퀀스에서 결혼식 끝 장면까지는 이야기할 부분이 많다.

나의 편집론/ 감독과 관객 사이에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장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 중간 매개자가 편집자다. 감독이 더 하려고 하는 얘기는 없는지 귀기울여 듣고 어떤 방법이 옳은지 길을 찾는 게 편집이다.

나의 편집실 에피소드/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영화와 관계없는 신을 하나 만들어넣은 게 있다. 비상이 걸려서 모두 군장을 하고 트럭에 올라타는 장면인데 수류탄 지급이나 탄창 챙기는 장면이 없어서 찍자고 말했다. 트럭이 출동하는 것만으로는 긴장감이 없었다. 대본에도 없고 제작비도 넘어가니까 포기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명필름이 추가 제작을 해줬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금자가 딸을 재우고 총으로 딸깍 소리를 내는 장면을 제안했다. 깊은 밤 금자의 아파트를 보여주는 인서트인데 백 선생에 대한 복수심이 설정만 있지 복수심을 드러내는 장치가 없어 빈 총이지만 방아쇠라도 당기는 소리를 넣자고 제안했다.

 


김선민 기사 [살인의 추억]

내가 꼽는 명편집/ 스탠리 큐브릭 감독을 좋아하는데 <아이즈 와이드 셧>은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바람에 스필버그가 마무리를 하지 않았나. 맞지 않는 점프컷을 썼다. 점프컷이 충돌하면서 긴장이 생기는데 스필버그는 생뚱맞게 했다. 잘난 척하는 편집이다. 그에 비해 큐브릭 감독의 영화 편집은 잘난 척할 수 있는데 잘난 척하지 않으면서 긴장감을 준다.


나의 편집론/ 편집은 선택이다. 기술 시사를 하면 편집할 때 매 순간 고민이 새록새록 되새김된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했는데 그 선택이 잘되었다 싶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못했으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왜 그랬을까. 영화가 뭘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어디로 가는가. 편집은 영화가 어디로 가길 원하는지 알아내고 영화의 모든 구성요소의 존재이유를 아는 것이며, 거기에 부합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요소들이 편집에서 선택의 기준이다.

나의 편집실 에피소드/ 일본영화를 얼마 전에 편집했다. <살인의 추억>이 일본에서 개봉도 하고 제법 알려진 덕에 인연이 되어 연락이 왔다. 아사다 지로 원작의 영화 <지하철>이다. 올 가을 개봉예정이다. 어제 기술 시사를 다녀왔는데 일본어 학원을 2개월가량 다녔지만 대충 일본어란 게 저런 거구나, 아는 정도다. 그쪽에서 아비드에 한글을 박아넣고 매 테이크에 번역을 깔아 편집을 도와줬는데 자막도 없는 영화를 보면서 일본말을 내가 다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말이 해석되는 듯한 기분이었고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일본 가수의 엔딩곡을 들으면서 비로소 일본영화구나 하고 느꼈다.
 

   

 

신민경 편집기사  [타짜], [암살] 


내가 꼽는 명편집/ 아무리 후진 영화도 건질 부분이 있다. 내 편집의 목표는 <아이 엠 샘>인데 과감한 점프, 격렬한 컷 간격이 충격이다. 감정이 있다고 해서 컷 길이를 늘리는 게 아니라 거꾸로 짧게 간다. 드라마라 하면 숏이 길거나 연기자 위주의 몰아주는 앵글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아이 엠 샘>은 거칠고 말도 안 되는 점프를 하는 액션영화식 편집인데도 감정을 해치지 않는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정적인 이야기인데 생략하고 점프하는 호흡이 놀랍다.

나의 편집론/ 내가 한 드라마들은 휴먼드라마인데 편집은 그런 방식이 아니다. 커팅이 격렬하고 소재의 특색-스포츠 장르의 특색을 주목한 편이다. 보통은 리얼리티를 강조하면 천정명이 직접 스케이트를 타는지, 감사용이 진짜 공을 던지는지를 궁금해하고 그래서 길게 붙인다. 그러나 난 수없이 컷을 나누고도 직접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테크닉은 없을까 연구했다. 감독은 아기를 낳고 나는 아기를 기르는 유모다. 리본도 달아주고 신도 골라주고 영화의 개성이 돋보이게끔 최대한 치장해주는 거다. 편집은 리듬이다. 리듬을 잃지 않고 최대한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컷이 없어도 지루하다면 점프컷이라도 하는 것이다. <달콤, 살벌한 연인> 인트로도 원래 점프컷은 아니다. 길게 찍은 건데 잘랐다. 지루한 건 못 참는다. 난데없고 정신없을 수 있겠지만.

나의 편집실 에피소드/ 구로사와 아키라 말처럼 편집이 안 되는 걸 매달려 결국 해내는 게 영화 아닐까. 남들이 버린 숏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도 해봤다. 98년에 영화를 포기하려고 했다. 일감도 안 들어오고 해서 뮤직비디오나 광고를 프리랜서로 했는데 황우현 튜브픽쳐스 대표에게 메이킹 필름을 일감으로 받았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MTV적인 감각에 눈떴다. 일거리를 위해 영화사에 명함을 돌리다가 이경자 편집실에 자주 놀러왔던 권칠인 감독이 <싱글즈>를 한번 해보라고 해서 현장편집도 하고 본편집도 하게 되었다. 현장편집을 하는데 최동훈 감독이 일하는 거 보고 <범죄의 재구성>을 선뜻 맡겼다. 뭘 믿고 맡긴 걸까? 하하하.

 

 

 

이은수 편집기사 [그때 그사람들], [하녀]


내가 꼽는 명편집/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는 죽은 사람들, 칼 드레이어, 장 뤽 고다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영화를 좋아한다. 그 사람들의 편집보다는 이야기를 보러 가는 것이다. 이야기는 결국 어디서 오는지 생각한다. 문학에서 오는 게 아닌가. 영화가 예술이 되게 하는 건 문학적 요소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안토니오니의 <정사>의 섬장면을 보면 편집이 다 어긋나 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건데 읽어낼 수 있다면 좋은 편집이고 읽어낼 수 없다면 개판인 거다.

나의 편집론/ 편집이란 마지막에 모든 영화적 요소를 뒤섞고 거기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살릴 것이냐를 컨설턴팅하는 과정이다.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배열로 만드는 게 원칙이고 지엽적으로는 너무 컷이 많아 너덜너덜해진 걸 심플하게 다듬는다. 편집의 법칙 가운데 하나는 소스불변의 법칙이다. 좋은 소스가 때로는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쁜 소스로 좋은 걸 만들 수는 없다. 무명으로 실크를 만들겠는가. 편집을 할 때면 청소하는 것 같고 수술하는 것 같다. 아는 만큼, 상상할 수 있는 만큼 보는 거다. 그 아는 힘이란 책읽기에서 오는 것 아닐까.

나의 편집실 에피소드/ 3월 말 때 폭설이 내려 촬영이 취소된 <오래된 정원> 촬영현장에서 임상수 감독은 점심을 먹고 느지막이 봄햇살을 즐기려다가 전화 한통을 받았다. 촬영이 취소된 휴일 같은 오후였지만, 이은수 기사는 현우(지진희)가 서울에 다녀오는 여정없이 바로 갈뫼장면이 이어져 갑갑하다고 전했고 제작진은 급작스레 강원 정선역의 도움을 받아 관광열차에서 현우의 서울행 기차장면을 찍었다.